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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마후 / 저녁에는 저녁을(샘플)

全体公開 단편 모음 15378文字
2023-12-21 21:04:10

1월 디페스타 에나마후 단편집 수록 예정
1.5만자 샘플 선공개합니다

Posted by @idiotalk

*퇴고 안 한 상태로 긁어왔어요







아사히나네 부고를 받은 것은 25시의 정기 모임에서였다. 양친의 부고를 알리는 아사히나의 목소리는 하염없이 단정하고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니까 평소 대외용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 아사히나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시노노메는 그게 굉장히 소름끼쳤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사히나는 일상적인 어조로 마치 작업 진척을 보고하듯 말했다. “아 참, 갑작스럽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참여할 수 없게 되었어. 민폐를 끼쳐서 미안.” 이라고. 정말 이렇게 말했다.

갑작스럽고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아사히나의 모친이 떠오른다. 그것은 요이사키도 아키야마도 마찬가지다. 멤버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아사히나의 모친은 크고 작게 25의 작업 진척에 존재감을 드러냈으니까. 신디사이저가 없어지기도 했고, PC 사용 시간을 제한 받기도 했다. 대학교 수험을 앞두고는 아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사히나의 모친이 25 활동을 마뜩찮아 하는 거지, 아사히나가 25를 관두려고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요이사키는 지금 이 멤버가 좋으니까 아사히나의 휴식기에도 멤버 교체나 신규 영입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건 시노노메도 마찬가지다. 아마 아키야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모친과 관련해서 아사히나의 25 활동에 짧은 제약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호조일 경우는 여름 방학을 맞아서 온 가족이 여행을 가는 거고, 곤란한 경우는 직접적인 제제 쯤 되려나. 다행인 점은 지금이 MV 제작에 열을 올리는 단계이기 때문에 아사히나의 피드백이 줄어도 큰 타격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멤버들 모두가 아사히나를 격려할 태세였다.

그러나 아사히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몹시 뜻밖의 것으로,

“두 시간 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거든.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심정지 상태라고……. 아마도 돌아가셨을 것 같아.”

그래서 굉장히 소름끼쳤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냥하고 부드럽고 침착한 아사히나의 목소리가 그렇게 끔찍하게 들리는 건 처음이었다. 시노노메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약간 정적이 흐른 뒤에 요이사키가 입을 열었다. 유키, 지금 집에 있어? 그리로 갈게. 그리고 나이트코드에서 해산했다.

시노노메는 장례를 겪어본 적이 있다. 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조부의 장례식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나는 건 거의 없다. 시노노메가 기억하는 건 장례 절차에 대한 정보값이 아니라 장례식의 감각 뿐이었다. 화단에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꽃들(그러나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부루마이로 먹었던 초밥(왜 어린이용 초밥에 와사비를 빼지 않았던지), 불경을 외는 소리와 매캐하게 타는 향(재미없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 것들만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한 살 터울의 동생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26시 무렵에는 모든 멤버들이 아사히나네 집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아사히나는 대체 어디서 찾아낸 건지, 고등학생때 입었던 교복을 꺼내서 입고 있었다. 사이즈는 그럭저럭 맞았지만 대학생이 그러고 있으니까 너무 기괴해보였다. ‘너 옷이 그게 뭐야?’ 평소대로라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도저히 물어볼 수 없었다. 안 물어보면 그만이겠지만 그렇게 덮어둘 수도 없었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의 이상 행위가 몹시 신경쓰였다. 평온하게 부고를 전하던 25시의 목소리부터, 그리고 지금 교복을 입고서 손님이 왔으니 차를 내놓아야겠다고 하는 것 까지.

아키야마는 늦은 시각이니까 차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했다. 당연히, 차를 내 오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으면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걸 시노노메도 알고는 있다.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시노노메도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일단은 병원에서 지금 부모님을 모셔오고 있대.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장례절차에 대한 걸 검색해보고 있었어. 나, 장례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거든. 상주는 처음 해 봐. 아사히나는 눈꼬리를 살짝 접어 내리는 특유의 표정으로 웃으면서 사근사근 설명했다. 이 멤버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4년 전 ‘유키’로만 존재했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아무도 아사히나의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에 뭐라 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게 더 이상하니까.

“그래서…… 친척분들께 전화를 돌리고 있었거든. 이제 슬슬 도착하실 것 같은데. 사망 당일에는 집에서 하룻밤 같이 지내는 게 맞으니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와 주었는데 재워주지도 못해서 미안해. 이를 어쩐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담뿍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시노노메는 그게 너무 싫었다. 이상했고, 끔찍했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의 모친이 아사히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모질게 대할 수 없다. 아사히나는 모친이 저를 사랑한다고 열심히 변호했지만 시노노메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시노노메는 자신의 부친마저도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왜냐하면 부친이 너무 모질게 굴었으니까. 심플하다. 부모가 자식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면 그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게 스물 두 살 시노노메의 지론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사히나는 제 모친을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내가 엄청나게 사랑하지만 나를 엄청나게 괴롭혔던 사람. 나를 엄청나게 괴롭혔지만 그래도 내가 엄청나게 사랑했던 사람.

그런 사람의 부재가 시작된다면.

시노노메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영영 알 수가 없다. 시노노메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니까. 시노노메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만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시노노메는 정말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요이사키는 아사히나에게 괜찮냐고 자꾸만 물어봤고 아키야마는 아사히나의 이상 행동에도 열심히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데도.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 지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을 하자니 예의가 없을 것 같았는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건 싫었다. 그래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아사히나의 교복 리본만 빤히 바라보다가, 친척이 아사히나네 집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아사히나의 이모는 왜 교복을 입고 있느냐고 꾸짖으려는 기색이다가 상태가 이상한 걸 보고 관뒀다. “학교도 졸업했는데 교복은 뭐 하러 입니. 그냥 검은 옷 입으면 되는 건데.” 그 목소리가 너무 다정하고 평범해서 이상했다. 모친의 언니인데 별로 닮지 않았다. 이모는 멤버들을 쭈욱 둘러보며 고맙고 기특하다고 했다. 이 늦은 시각에 여기까지 와 줘서 너무 고맙다고. 집이 어디냐고. 아줌마가 태워다주겠다고. 그 냉혈한 모친의 언니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하고 인상 좋은 중년이었다. 그들은 어른의 호의를 요령 좋게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이모의 차를 얻어 타고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귀가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셋이 뭉친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시노노메의 집이 가장 멀어서 가장 마지막이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모는 별다른 스몰토크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저 피곤했겠구나, 라는 말만 했다. 부모님에게 연락했니? 이런 말도 안 물어봤다. 시노노메는 뒷자리에 구겨앉아서 가로등만 켜진 골목 풍경만 바라봤다. 유리창에 아사히나의 얼굴이 거뭇하니 비칠 것만 같았다. 이동하다가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사히나인 것 같았다. 대화를 들어보니 시신이 집에 도착했다는 것 같았다. “알았다 마후유, 고생했어. 이모 금방 갈게.” 그리고 차는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시노노메는 차에 내려서 한 번 더 감사하다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2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거실에 부친이 있었다. 안방에 급히 나갔다 온다며 행선지도 메모해두었기 때문에 부친은 별 말 없었다. 그저 나한테 전화를 하지 그랬냐, 며. 전화로 깨워서라도 데리러 오라고 하지 그랬냐, 며. 그렇게 말했다. 아사히나네 부고를 받고 집에 와서 부친의 얼굴을 보는 게, 시노노메는 조금 힘들었다. 동생은 아마 자고 있겠지.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동생한테 해서 뭐 어쩌자는 거지.

시노노메는 어쩐지 조문객으로 초대받지 못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시노노메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다들 이제 겨우 스물 하나, 둘의 어린애들일 뿐인데.

라인 채팅방에는 집에 무사 귀가했다는 채팅이 와 있었다. 아사히나는 몹시 우아하고 격식 있는 문장으로 어려운 시간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그룹 활동에 폐를 끼치게 되어 면목없습니다 ,따위의 메시지를 보냈다. 시노노메는 답장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집에 왔어’ 라고만 보내고 말았다. 그냥 자려고 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동틀때까지 뒤척거렸다. 그러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겨우 오전 열한 시 사십 이 분 이었다. 잠은 다섯 시간도 못 잤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사인은 교통사고인데 시신이 온전한 상태였을지 궁금했다. 병원에서 알아서 적당히 수습한 다음에 운구했겠지만,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인지 시노노메는 감이 안 왔다. 고인과 함께 밤을 보내는 건 시노노메도 해 봤다. 그렇지만 시체와 단 둘이 남겨진 적은 없었다. 아사히나는 이모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혼자서 양친의 시체와 함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등줄기에서 땀이 훅훅 흘러내릴 것 같은 이 무더운 새벽에. 시노노메는 정물화같이 정적이고 정갈한 아사하나네 집 풍경을 회억한다. 소음이라고는 아사히나의 방 어항의 산소발생기밖에 없을 것 같은 새벽을. 부모의 시체 앞에 무릎꿇고 있을 교복 차림의 아사히나를.

시노노메는 혼자 있기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요이사키와 아키야마를 불러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연락에 응했다. 아시하나만 없이 언제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앉아서, 다 식어빠진 감자튀김을 뒤적거리고 소프트 드링크를 방치했다. 세 명 모두가 아사히나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상태였으나, 정작 셋이 모여서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동안 시노노메 눈에 비친 아사히나의 모친은 25의 방해꾼, 악당 정도였다. 아사히나가 모친을 변호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방해꾼이고 악당인 사람이 이렇게 퇴장해도 되는 건가.

25 멤버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아사히나 모녀에게 이별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나, 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별이 이렇게 엉망진창일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시노노메는 조금 허탈하고 입 안이 썼다. 이 모녀의 안전 이별을 위해 지금까지 기울인 신경과 노력이 얼마나 되는데. 아니, 아사히나에게 이별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금까지 셋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시노노메는 그 모친의 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친을 사랑한 적 없고 그 모친에게 사랑받은 적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사히나 씨 같은 사람은 징벌 받았으면 좋겠다고. 징벌까지는 어렵다면, 큰 코 다치고 제 잘못을 뉘우치면서 딸 앞에서 무릎 꿇고 빌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노노메도 제 부친이 그러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으니까. 부친과 관계 회복이 영영 되지 않았다면, 시노노메는 지금까지도 제 부친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을 테니까.

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괜히 화가 치밀었다. 친구의 부모가 죽었는데 화가 난다니 친구 자격은 확실히 탈락이다. 친구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고인을 애도하는 게 마땅하다는 건 안다. 시노노메도 물론 아사히나의 처지에 크게 슬퍼하고 있었고, 위로를 하고 싶었다. 나이트코드 밖 25의 목표는 (일단은) 아사히나의 안전한 이별이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이 서클이 지속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별을 고하기도 전에 상대 쪽에서 멋대로 이별 해 버렸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아사히나가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죽음과 슬픔일 뿐이다. 그래도 멋대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별 할 기회를 뺴앗겼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멋대로 이별을 통보 받을 수는 없는 거였다.

“다들 잠은 좀 잤어?”

아키야마가 입을 열었다. 모두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으로 시간을 죽일 때 입을 먼저 여는 건 항상 아키야마였다.

“약간…….”
“뭐, 적당히.”

요이사키와 시노노메가 대답했다. 사실 잠은 거의 못 잤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답하고 나니 또 할 이야기가 없어서, 시노노메는 마지못해 흐물텅한 감자튀김을 질겅거렸다. 메론소다가 너무 달아서 혓바닥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할 말이 또 없는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여서 각자 성의 없게 감자튀김을 씹었다. 고무라도 씹는 표정으로. 그렇게 앉아 있다가 셋이 동시에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아사히나의 부고장이었다. 어려운 행정 관련은 어른들께서 처리 해 주셨기 때문에 자신은 크게 신경 쓸 것이 없으며, 일이 정리되는대로 바로 복귀하겠다는 메세지가 이어졌다.

세 사람은 초대받지 않은 장례식에 가도 되는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결국 조문객으로 가지는 않아도, ‘혼자 남은 친구가 걱정되어 얼굴을 보러 온 절친한 친구 모임’ 정도로 소명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모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아사히나에게 가장 먼저 찾아 온 사람은 바로 이들이었으니까.

“그럼, 환복하고 다시 이 앞에서 만나자.”

요이사키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아키야마는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혹시 모르니까 부조금도 준비하는 게 좋을까?”
“봉투 내가 사 올게.”

시노노메는 냉큼 대답했다.

천만다행으로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았다. 아사히나의 친척들은 물론이고 생전 고인과 오래 보았던 지인들도 천애고아가 된 외동딸을 안타깝게 여겼다. 어릴 때 부터 부모 속 썩이는 일 하나 없이 훌륭하게 자라 의대에 진학한, 창창한 미래가 기대되는 스물 세 살 어린애는 동정받기 좋았다. 그리고 그 외동딸의 소식을 듣고 새벽에 달려 와 함께 있어 준 친구가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괜찮은 미담이 되었다.

그들은 부루마이를 한사코 거절하고(정식으로 초대받은 조문객이 아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아사히나의 절친으로서 걱정이 되어 왔을 뿐) 아사히나가 기나 긴 장례 절차를 버티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시노노메가 미취학 아동 시절에 흐릿하게 감각하고 있던 장례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단에 알록달록 장식된 꽃들은 몹시 인공적이어서 차라리 종이접기 공예품처럼 보였다. 불경을 외는 소리는 주문 같아서 넋이 나갈 것 같다. 태우는 향이 매워서 눈물이 났는데, 그걸 보고 또 조문객들이 안쓰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사히나는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있었다. 안 그래도 흰 얼굴이 이제는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쓰러지지도 않고 조문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인사 했다. 절을 올리는 자세도 완벽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안타까워했다. 저렇게 의젓하고 똑부러지는 애가 어쩐다, 하고. ‘먼 길 발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아시히나는 생긋 웃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안타까워했다. 어쩌면 저렇게 의젓할 때가 있냐고. 슬픔을 열심히 참고 정성을 다해 조문객 맞는 자세에 감동했다.

시노노메 눈에는 한없이 기괴하고 불쾌한 광경이었다. 상복을 입고 생긋생긋 웃고 있는 아사히나가, 영정 사진 속 아사히나 씨와 똑 닮아 있어서 더 기분 나빴다. 아사히나 씨가 웃고 있는 얼굴은 아사히나와 많이 닮았다. 모친의 영정 앞에서 사진 속 모친과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딸이라니.

간밤에 보았던 아사히나네 이모가 와서 인사했다.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시노노메는 거기에 신경을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이 기괴한 장례식을 버티기 바빴을 뿐.

아사히나와 만나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요이사키는 아사히나의 손을 잡고 울었다. 아키야마도 그렇게 했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 앞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다 왔다. 집으로 어떻게 갔는지는 더더욱 기억이 없다.

그리고 시간은 꾸준히 쏜살같이 흘렀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아사히나는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기 바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25도 활동을 중지하게 되었다. 쉬는 동안 셋은 따로 모임을 갖지 않았다. 각자 생각이 번잡했으므로. 일단 시노노메는 확실히 그랬다. 그래도 번잡한 마음과 별개로 그림은 계속 그렸다. 시노노메의 양친은 매우 건강하고 안전하게 집에서 잘 지내고 있었으므로. 시노노메의 모친은 요리 솜씨가 좋고 밥이 맛있다. 그걸 매일 먹으면서, 가끔 부친의 어드바이스를 들어가면서 그림만 그렸다. 셀카는 찍고 싶지 않았고 계정도 방치했다. 손이 굳지 않게 하려고 CG 그림도 그렸는데 그것도 업로드 하지 않았디. 그렇게 여름 방학을 ‘보내기만’ 하고 있었다. 유난히 긴 여름 방학을.







중간에 한 번 아사히나를 만난 적 있다. 조문 와 주었던 것의 답례품을 주고 싶다고, 먼저 그렇게 말을 꺼냈다. 모인 김에 서클 활동 재개에 대한 이야기도 하자고. 요이사키는 아사히나를 배려해서 일부러 아무것도 해 놓지 않았지만, 아사히나는 작업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으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을 빨리 해 내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대목에서 멤버들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사히나는 양친의 죽음으로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고. 그러니까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고 시름을 앓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왔다. 언제나 먹던 감자튀김이나 우롱차 대신 포카치아에 그라탕, 햄버그. 그래도 감자튀김 하나는 주문했다.

아사히나가 준비한 답례품은 오차즈케였다. 포장 상자마다 각각 요이사키, 아키야마, 시노노메, 이렇게 이름이 써 있었다.

“우리는 조문객으로 간 것도 아닌데…… 받아도 되는 거야?”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한 거야.”
“네가?”

약간 놀라서, 시노노메의 언성도 그만큼 살짝 높아졌다.

“어쨌거나 너희도 왔으니까.”

아사히나의 대답은 간결하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들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었다. 아사히나도 성실하게 밥을 먹었다. 시노노메도 감자튀김을 좀 먹었다. 갓 튀겨서 따끈따끈하고 바삭했다.

요이사키는 아사히나에게 이것저것 컨디션을 물어보았다. 아사히나는 고저 없고 딱딱한 평소의 말투로 대답했다. 좀 더 힘이 주우욱 빠지고, 말에 공기가 더 많이 섞여서 조금 농도가 낮은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25가 알고 있던 아사히나는 맞았다. 아키야마는 분위기를 풀어주는 화법의 달인이고, 요이사키도 모친의 상실을 겪어보았다. 그래서 아시히나에게 말을 붙일 건덕지가 있었다. 아사히나는 아키야마의 말에 적당히 대답알 해 주었고, 요이사키의 걱정에도 적당히 괜찮다고 대답했다.

시노노메가 아사히나에게 묻고 싶은 건 단 한 개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너는 괜찮은 거냐고.
그렇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아도,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해방되어도. 원치 않았던 방법으로 강제로 해방 당해도 괜찮은 거냐고.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아사히나를 보니까 할 말이 쏙 들어갔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사히나는 정말 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좀 이상하고 종잡을 수 없는 애지만 그래서 또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갈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시노노메는 이렇게만 말했다. 열심히 하라고. 하다가 막히는 것 있으면, 여차하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시노노메의 어드바이스 없어도 아사히나는 이미 재능 넘치는 창작자였지만 괜히 그렇게 말해 보았다. 그건 어떻게든 말을 붙일 핑계였다.






10월인데 아직도 더웠다. 달력은 가을이라고 하는데 체감은 아직도 늦여름이다. 유난히 여름방학이 더 길어서 그런 것 같았다. 시노노메는 옷장이나 아침의 기온보다도 서클 활동에서 더 계절감을 느꼈다. 신곡을 하나 내고 나면 계절 하나가 저물어가곤 했으니까. 그러나 올 여름의 25는 계절 하나가 저물어가도록 신곡을 업로드하지 못했다. 아사히나 때문에 작업이 한동안 중단되었으므로.

25는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하자는 처음의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까지는 반드시 이 곡을 업로드 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 그저 곡 하나를 만들고, 발표하고, 활동하는 기간이 보통 3개월 정도라는 통계만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요이사키는 늘 새로운 시도를 원했다. 그래서 25는 처음으로 계절감에 맞춰 신곡 작업 중이었다. 장르는 여름을 겨냥한 고딕 호러.

캐롤만큼이나 시즌을 타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여름에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멤버 중 하나가 최근에 상을 치루었으니까 시체나 좀비나 귀신이 나오는 호러 작업을 강행하는 건 배려 없는 행동 같았다. 그래서 아사히나만 괜찮다면 나중에 형편이 괜찮을때 공개하는 것으로 무기한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아사히나는 빨리 작업을 마무리 짓고 싶다고 했다. 그 전에 써 두었던 가사도 다시 손 보고 싶다면서. 당사자가 너무 확고하게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하니까 다들 홀린듯이 동의해버렸다. 그래서 일단은 핼러윈 공개를 목표로 작업을 재개했다.

그래서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느냐 하면…… 시노노메는 그냥 해야 할 일이니까 작업을 했다. 영감이나 기분이 난조여도 작업 진척이 늘어지는 건 시노노메 성격 상 견디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컨디션 핑계로 미루어 두었다가 기분 내킬때 벼락치기로 그리는 버릇이 있었지만, 대학생이 되면서 작업량이 훅 늘어나다 보니 성향이 좀 바뀌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작업실에서 과제 좀 하다가 자정이 넘으면 자취방에 돌아와 나이트코드에 접속하고 또 작업을 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시노노메는 이제 자신의 기분이나 영감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요이사키의 노래만 있다면, 시노노메는 언제까지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다가 막히는 순간이 별로 없었다. 가뜩이나 손이 느린데 툭 하면 자주 막혀서 골머리를 앓았던 고교 시절은 아주 먼 옛날 같았다. 25에서 가장 손이 느렸던 시노노메의 작업 속도가 빨라진 뒤 25는 작업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서로 오랫동안 보아 왔고, 서로의 스타일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서로의 스타일을 아는 만큼 제 스타일도 알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좀 꾸역꾸역 작업을 재개한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과 별개로 멤버들의 작업 진척은 안정적이었다. 회의할 때의 분위기도 완전히 평소와 그대로였다. 시노노메가 아사히나의 컨디션을 완전히 믿지 않는 것과 별개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사히나가 제게 도움을 요청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사히나는 대체로 작업 페이스에 굴곡이 없었으니까.

에나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난 여름 모친의 죽음에 아사히나가 보였던 반응의 실마리가 이제야 보이는 것 같아서. 솔직히 아사히나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실례되는 말이지만, 시노노메는 조금 통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요는, 작업 진도가 도무지 나가지 않으니까 시노노메의 자취방에서 며칠 간 묵게 해 달라는 거였다. ‘도와줄 수 있어?’ 가 아니고 ‘도와주면 좋겠어.’ 아사히나가 그렇게 단박에 선언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작업을 해야 하니 자취방에 있게 해 달라니, 조금 황당해도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사히나는 고등학생 때 시노노메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간 적 있다. 그 날 밤 내내 아사히나는 눈을 시커멓게 뜨고 작업에 몰두했다. 가사를 써 내려가는 아사히나는 노트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시노노메는 노트에 빨려들어가기 직전의 아사히나를 보고, 마찬가지로 스케치북에 빨려들어갈 기세로 데셍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날 둘 다 컨디션이 최고조였고 정말 만족스러운 작업을 했다는거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몰입하면 능률이 오른다는 건 그때 알았다. 그래서 작업 구상이나 스케치를 할 때면 종종 다른 멤버들을 불러다가 세카이에서 함께 작업했다. 악기나 PC가 없어도 되는 작업 같은 것……. 고등학생 때까지는 자주 그랬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좀 소원해졌지만.

아키야마가 18살이 된 이듬해 봄에 그들은 쫓겨났다. 정확히는 세카이로 통하는 음원이 사라졌다. 모두가 각자의 폴더를 뒤적거려도 찾을 수 없었다. 회의실 겸 작업실 겸 휴식 공간이었던 세카이는 그렇게 은폐되었다. 그리고 그들도 세카이를 강제로 졸업했다. 그 뒤로는 서로의 얼굴을 보려면 직접 움직여야 했다.

요이사키와 아키야마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아사히나는 집에서 통학했다. 시노노메는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해 놓고 학기 중에는 거기 살았다. 그러니까 시노노메만 뚝 떨어져 있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시노노메도 바빠서 본가에 가지 못했고, 그래서 멤버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 아사히나를 맞이하려고 방 청소를 하다가 시노노메는 문득 깨달았다. 개강한 이후 다른 멤버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사히나에게 답례품을 받은 이후로는 다들 어쩐지 모임을 피하고 있었다.






시노노메 딴에는 현관 앞에 캐리어를 펼쳐놓을 공간을 마련하려고 신발장 정리에 애썼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아사히나의 짐은 단촐했다. 백팩을 메고 손에는 스포츠백 하나가 끝. 이삿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것 보다는야 나았지만. 손에는 포장봉투가 다 어그러진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다.

“이게 뭐야?”

아사히나에게서 받아든 케이크 상자에는, 익숙한 모양새의 치즈케이크가 세 조각 있었다.

“우와, 너 이런 센스도 있었어?”

시노노메는 평범하게 농담 아닌 진담으로 말했다. 아사히나는 평범하게 대답했다. 남의 집 방문할 때는 선물 사 들고 가야 맞으니까.

“지난 번에 에나네 집에 갔을 때는, 너무 갑작스럽게 간 거라서 준비를 못 했어.”
…….”

지난 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그걸 어제 일처럼 여상하게 말하는 게 좀 웃겼다.

아사히나가 저녁을 먹지 않고 왔다고 해서, 시노노메는 즉석밥을 하나 더 데웠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덜어다가 접시에 담고, 된장국도 두 그릇 펐다.

“잘 먹겠습니다.”

딱히 시노노메에게 하는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어쨌거나 아사히나는 잘 먹겠다고 하고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밥 맛도 못 느끼는 주제에. 그런 걸 일일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좀 유치하니까. 아사히나는 밥을 좀 떠서 오물거리더니 아주 담백하게 감상평을 내놓았다.

“에나 의외로 요리를 하는 타입이구나.”
“맛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괜찮은 것 같아.”

‘잘 모르겠다’가 아니라서 의외였다. 된장국은 물에 블럭만 넣으면 되는 간편조리식품이고, 반찬은 주말에 모친이 와서 냉장실 한가득 채워놓고 간 거였다. 친구가 온다니까 힘 좀 썼다면서. 그거 내가 한 거 아니고, 그냥 집에서 가져 온 거야. 시노노메는 그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밥을 먹고 나서 아사히나가 사 온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었다. 밤이지만 어차피 작업할 거니까 인스턴트 커피도 곁들였다. 아사히나는 시노노메더러 케이크를 다 먹으라 했지만, 시노노메는 그림이 별로 안 좋다면서 꾸역꾸역 아사히나가 앉은 자리에 케이크 한 조각을 밀어붙였다.

“그나저나 너 엄청 단촐하게 왔네. 작업할 것도 챙겨 온 거야?”
“노트북은 가방에 넣어 왔어.”
“신디사이저는? 그거 꽤 부피 클 텐데.”
“너무 오래 써서…… 그냥 버리고 여기서 간이로 키보드 하나 사려고.”
“주문 해 놓은 거 있어?”
“아니.”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무엇이든 마음 정리를 하기에는 좋은 시기가 맞다. 그 신디사이저는 오래 되기도 했고. 오래되었다고 해서 성능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래되었다는 게 문제다. 모친이 몇 번 내다버리고, 아사히나가 몇 번 주워오고, 시노노메가 몇 번 대신 맡아주고, 또 그러다가 모친에게 몇 번 빼앗긴 신디사이저는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이 참에 성능 좋고 더 예쁜 디자인으로 하나 장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카나데한테 추천 받은 거 있어?”
“아직 안 물어봤어.”
“그럼 이따가 물어보자. 그리고 내일 키보드 사러 가. 돈은 있지?”
“응.”

그리고 각자 노트북을 켜서 작업했다. 서로의 작업 진척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어디 막히는 부분은 없냐고 물으니까, 어딘가 막히는 부분은 있는데 어디가 막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며 모호한 대답을 했다. 왜 막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시노노메는 그 기분을 완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사히나에게 없는 영감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컨디션 체크라든가 작업 환경 바꾸기 같은, 별로 도움은 되지 않고 뻔한 이야기만 할 수 있었다. 용케도 아사히나는 유순히 시노노메의 말에 경청했다. 그러다가 25시가 되었고, 그들은 요이사키에게 키보드를 추천받고, 조금 더 작업을 이어나갔다.

“난 내일 아침에 수업 있어서 여기까지만 하려고. 너는 어떻게 할래?”
“에나가 잘 거면 나도 여기까지 할게.”
“내일 학교는 몇 시에 가?”
“휴학 했어.”
…….”

시노노메는 고개만 꾸닥 해 보이고 작업을 갈무리했다. 아사히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서, 아니, 오히려 더 빨리 잘 움직여져서, 평소 작업 시간보다 짧았는데도 일당만큼 해 냈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의 페이스가 궁금했다. 노트북을 조작하는 아사히나의 옆모습은 언젠가 고등학생 때 세카이에서 자주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침착하고 표정이 없고 호흡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눈만 움직이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시노노메는 그게 신기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멤버들은 분위기나 성격이나 사못 바뀌었다. 하지만 아사히나만큼은 그대로 같았다. 오늘은 세카이가 닫힌 후 처음으로 작업에 몰두하는 아사히나를 봤다. 그건 고등학생 때의 아사히나와 꼭 같았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 같은 사람에게도 유년기가 있었고, 노년기가 올 거라는 게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태어날 때부터 고요하고 침착하고 표정이 없었을 것 같았으므로.

아사히나가 노트북을 덮었다.

“다 했어.”
“잘 되는 것 같아?”

아사히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오늘 피곤해서 그래. 일단 씻고 나와.”

침대 옆에 손님용 이부자리를 깔았다. 시노노메는 항상 침대에서 자는 걸 고수하는 타입이지만 여차하면 하루이틀 정도는 아사히나에게 침대를 양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아사히나를 꽤나 측은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그래서 싫은 소리도 한 마디 안 하고, 조금 더 친절하게 굴고 싶고, 어떻게든 어드바이스를 해 주고 싶은 거였다는 걸.

이 측은지심은 아사히나에게 의미 있는 걸까.

“마후유, 바닥에서 잘 자? 못 자겠으면 침대에서 자도 괜찮은데.”
“신경 안 써. 그냥 바닥에서 잘게.”
“알았어. 너 누우면 불 끌게.”
“응.”

불이 꺼지고 눈이 어둠에 익어갈 때 쯤 되니까 졸음이 쏟아졌다. 시노노메는 같은 지붕 아래 누워있는 아사히나의 존재감도 잊은 채 천천히 잠에 먹혀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아사히나를 생각했다. 마후유를 측은하게 여기고는 있다. 하지만 내가 걔를 그렇게 여긴다고 해서 뭐 어쩌라는 거지. 뭐가 달라진다는 거지. 오늘 밤만 해도……. 내가 걔를 도와 주고 싶다고 한들 걔한테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측은하게만 여기고 있으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졸려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그런 번잡한 생각은 둥둥 떠다녔다. 그러면서도 잠은 아주 깊게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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