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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마후 / 에필로그 (샘플)

全体公開 단편 모음 2 5892文字
2023-12-23 21:51:18

1월 디페스타 에나마후 단편집 수록

Posted by @idiotalk

시노노메 에나와 아사히나 마후유가 약 8개월동안 교제하면서 싸운 횟수는 0건이다. 이 ‘싸우다’라는 행위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1. 양쪽이 다 쌍방으로 서로에게 감정이 상했으며 2. 그래서 언성을 높이면서 말다툼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건 싸움이다. 그래서 여기에 맞춰서 계산해보면 총 0건이다. 실로 사이가 좋아도 너무 좋은, 거짓말같이 좋은 천생연분 커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싸웠다는 기준에서 쌍방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좀 더 디테일해지는데, 시노노메 에나가 아사히나 마후유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낸 횟수는 총 188건에 달한다. 평균을 내면 1.29일에 한 번 꼴이다. 그냥 매일 한번씩 화를 냈다. 이 숫자는 시노노메는 끓는점이 참 낮고, 혼자서 화를 잘 내고, 혼자서 허공에 대고 떠드는 여자임을 방증한다. 아사히나는 어지간한 일로는 시노노메에게 감정이 상하지 않으며(아니 애초에 감성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아! 차라리 화라도 내면 속이 편하겠다. 이거 뭐 망부석 앞에서 혼자 바보짓 하는 것도 아니고), 참을성이 많기 때문이다(참을 게 있고 안 참을 게 있지. 그거 구분하는 것도 다 사회성의 영역이다). 끓는 점 낮은 시노노메도 때와 장소를 봐 가면서 참을 때가 있다. 그래서 시노노메가 화낼 뻔한 걸 꾸욱 눌러참은 경우는 제외한 게 188건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디테일을 따지고 들자면, 시노노메가 아사히나에게 화를 내는 원인은 보통 모 아니면 도. 이벤트 제공인이 아사히나 마후유인 경우가 96건, 아사히나 마후유의 모친인 경우가 92건. 이 통계를 보고 아키야마 미즈키는 통탄한다. “와우.”

하루에 한 번 꼴로 (일방적이다만) 언성이 높아지고 화를 내는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꽤나 역동적인 러브라이프를 구가하고 있다는 뜻일진데, 웃기게도 둘이 사귀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사귄다는 티가 하나도 안 나서. 말을 안 했으면 아마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아키야마 미즈키는 또 이렇게 말했다. “뭐가 달라진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

“하하, 에나낭이랑 유키는 오늘도 사이가 좋네.”
“네 눈에는 이게 좋아 보여?”
“에이, 왜 그래. 평소에도 그렇게 다정하게 싸우면서.”

아키야마가 시노노메를 놀리면서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아사히나가 불쑥 뱉은 것이다.

“나는 좋다고 생각해.”
“그래, 그렇겠지. 에나낭이 조금 속이 좁아도 유키가 털털하니까 합이 잘 맞아.”
“응. 그래서 연애도 무사히 하는 거라 생각해.”
“아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구나.”

시노노메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아키야마는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단다(아사히나 성격에 농담같은 걸 할 리가 없는데도, 그게 진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그랬단다). 요이사키는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음악 이외의 것에는 아무래도 다 ‘괜찮아’로 일관하는 이 그룹의 리더는, 이게 재미없는 농담인지 진짜인지 구분할 생각도 못 했다. 연애를 한다니까 그렇구나, 사이가 좋구나, 하고 담백하게 넘어갔다는 거다. 요이사키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입장에서 시노노메는 좀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카나데 눈에는 나랑 마후유가 대충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 아냐. 꽃잎반 선생님, 저랑 마후유랑 사귀기로 했거든요. 오늘부터 1일이에요. 오늘 하원길에 같이 문구점 가기로 했어요. 마후유한데 토끼 모양 지우개 사 줄 거에요. 멋지구나 시노노메. 아사히나랑 잘 갔다 오렴. 횡단보도 건널때는 반드시 오른쪽 한 번, 왼쪽 한 번, 손을 들고 건너는 것 잊지 않도록 하자.

아키야마가 정말 농담으로 받아들였을까 봐, 그리고 그걸 가지고 시노노메를 놀리는 데 자주 쓸까봐, 시노노메는 요이사키와 아사히나 몰래 아키야마를 불러 밥을 사 줬다. 진짜 사귀는 것 맞으니까 (어쩌다 사귀게 되었는지 그 기구한 경위도 서술했다) 요이사키에게 장난으로라도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사유는……. 그냥, 요이사키한테 부끄러워서. 동경하는 사람 앞에서 이 바보짓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알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사히나와 교제하는 게 부끄럽다는 건 아니다. 부끄러울 만한 요소가 없다. 애초에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와 연애를 전제로 교제하는 것도 아니니까. ‘우와, 에나 제법 대단한 쓰레기 여친이었네.’ 아키야마의 반응이 눈에 불 보듯 뻔해서, 이 생각은 단 한번도 밖으로 내보인 적이 없다. 연애는 로맨스니까. 우정이랑 다른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21일, <오늘부터 1일> 도장을 콱콱 찍으면서도 시노노메는 몰랐다. 아사히나와 자기 사이에 동료나 유대감 이상의 특별한 감정이 생길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서로 상호 합의 하에 너와 나는 상대가 일 순위인 거야. 누가 뭐래도 너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나고, 나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도 너라는 뜻이야.’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사실은 시노노메도 제 마음을 잘 몰랐다.




다시 싸움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사히나의 모친이 이벤트 제공인인 92건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보자면, 이건 96건의 아사히나 잘못보다도 더 시노노메를 화나게 했다. 아사히나의 모녀 관계가 이 커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 맞는데, 그렇게 생각하려니까 너무 이상하고 억울했다. 약간 자존심도 상했다. 나 어딜 가도 나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애들만 만나고 다녔는데. 걔네들은 나만 보면 껌뻑 죽어서 일 없어도 항상 화장품이랑 인형이랑 꽃을 갖다바쳤는데. 그렇다고 마후유가 나 좋다고 죽자살자 매달리기를 바라는 건 아니구. 얘가 나한테 뭐 사다 바치기를 바라는 건 더더더 아니구. (그런 걸 상상하려니까 어쩐지 속이 메슥거리는 건 기분 탓?) 그런데 이렇게…… 이렇게까지 나랑 사귈 의지가 없어 보이는 애랑 이러고 있는게 맞는 거냔 말이야.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애나, 아니면 직장 다니는 성숙미 물씬 풍기는 언니들 만나는 건 시노노메에게 일도 아니었다. 시노노메는 예뻤고, 자기가 예쁜 걸 잘 알았고, 자기가 예쁜 걸 잘 이용했고, 정말로 예뻤으니까. 그렇게 예쁘고 연애 잘 하는 자신이 이런 애랑 사귄다는 게 시노노메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이렇게까지 꾸역꾸역.

그런데 더 웃긴 건, 그렇다고 해서 아사히나와 헤어질 생각도 안 들었다는 것이다. 이 지독한 마마걸과의 연애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왜? 그야, 그만 두면 내가 지는 것 같잖아. 얘네 엄마 때문에 내가 화나서 얘를 찬다고? 대체 왜? 아니, 여친 엄마가 대체 뭐라고 내가 얘랑 연애를 그만둬야 하는데? 이런 오기가 자꾸만 생겼다. 사실 지대한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맞다.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긍하는 건 상상도 안 된다. 그러면 그게 ‘진짜’가 되어버리잖아. 시노노메는 그걸 사실로 만들기가 죽어도 싫었다.

아사히나의 모친은 시노노메-아사히나 커플의 도화선이었다. 미미하고 끈덕지게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그래도 아사히나가 먼저 잘못했다) 시노노메는 화가 났다. 참으려고 했는데 그 날은 폭염이 심했다. 불타는 태양광으로 정수리가 지글지글 타 버릴 것 같았는데 화가 나서 정말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의 손목을 쥐어채서 카페로 끌고 들어갔다. 이 미칠 것 같은 팔 월의 땡볕에, 길거리에서 땀 흘리면서 아사히나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단순히 컨디션 불량이라 억지를 쓰고 예민하게 반응한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시원한 곳에 들어가 얼음을 오독오독 씹으면서 진정하고 찬찬히 대화로 풀어나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아사히나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노노메는 부디 발신인이,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다.
아니면 하다못해 통화 내용과 그에 따른 결과가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가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간절히 ‘이것만 아니기를’ 하고 바라면, 반드시 ‘이렇게’ 된다.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대체 왜?”
“엄마가 찾으셔서…….”
“긴급하고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야?”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

아는 건 대체 뭔데? 긴급하고 중요하고 심각하지도 않고 마후유 오늘 빨래가 너무 많은데 같이 널어줄래 이딴 용건이어도 엄마가 부르면 간다는 건가? 시노노메는 여기서 폭발했다.

“너 지금 내가 왜 여기 오자고 했는지는 알아?”

더워 죽겠는데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차양막 그늘에 어정쩡하게 서서 실랑이 하는 자신이 너무 바보같았다. 문가에 서 있으니까 안에서 종업원이 흘긋 봤다. 카페를 나서는 사람이 쳐다봤고, 카페 들어오려던 행인들도 발걸음을 틀었다. 시노노메는 부끄러운 것 보다도 제가 화난 게 앞서는 타입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아사히나는

두 눈을 송아지처럼 꿈벅거리면서 순진한 얼굴로

……미안, 사실 잘 모르겠어.”

라고 대답했다.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 정한 몇가지 규칙이 있다. ‘네가 연애가 궁금하다고 했고, 내가 궁금하다고 했으니까 미리 말하는 거야. 내 앞에서 거짓말하고 숨기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 모든 관계가 다 그렇지만 신뢰가 무너지면 그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거야.’ 아사히나는 정말 그 말대로 했다. 연애하면서 그거 하나는 좋았다. 꼬박꼬박 말 잘 듣는 거.

하지만 이런 날에는 역효과였다.

“그래, 당연히 모르겠지! 그럼 너는 대체 아는 게 뭐야?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오라고 하면 오고, 엄마가 가도 된다고 하면 공손하게 허리 구십 도 꺾어가면서 인사하고 뒷걸음질로 대문 나서서 나오니? 그렇게까지 해서 나 만나야 해?”

이게 그렇게까지 사무치고 슬프고 불만이고 비참할 건 아니었다. 시노노메는 아사히나를 진짜 애인으로 취급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시노노메는 화가 나면 제 감정에 잡아먹혀서 눈물이 먼저 나오는 타입의 여자였다. 유리문 안쪽의 종업원은 이 커플싸움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기라도 한 건지, 이쪽을 대놓고 흘금거린다. 행인들의 발걸음도 이 커플을 중심으로 아주 느려진다.

“이쯤 되면 내가 너랑 사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너네 엄마랑 사귀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니까, 아사히나는 비로소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고등학생 시절에 비하면 가히 고무적인 사건이다. 그때의 아사히나는 시노노메가 뭐라고 떠들어도 목석같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이런 소리나 하면서. 그런데 그 때보다 지금이 더 화났다. 그때는 그냥 하는 짓이 별로 마음에 안 들고 거슬리는 작업 동료 1이었지만 지금은 (명목상으로나마) 애인이다. 당연히 이쪽이 더 감정 상할 만 하지. 게다가 시노노메는 아사히나에게 어느 정도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아사히나가 자신과 함께하면서 점진적으로 더 나아질거라는, 자기가 그렇게 바꾸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오만한 기대. 그런데 아사히나의 모친은 그 기대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쾅! 하고 헤집어 놓았다. 시노노메는 나름 열심히 인내해가면서 기대를 쌓고 있는데 모친은 겨우 전화 한 통으로 콕, 하고 도미노처럼 그걸 무너뜨렸다. 억울할 수 밖에.

“미안해…….”

아사히나의 입에서 그 소리가 흘러나올 때 쯤 되니까 힘이 쭈욱 빠졌다.

“미안해, 에나.”

나름 감동 받아야 하는 시츄에이션 아닌가. 아사히나가 분위기를 파악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적절한 멘트까지 쳤는데. 하지만 시노노메는 전혀 기쁘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됐다고, 어머니가 부르셨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하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 카페에는 혼자 가서 케이크를 잔뜩 포장 해 왔다. 집에 갔더니 남동생이 기겁을 했다. 이거 다 언제 먹을 거냐고. 시노노메는 코웃음 치면서 아이스 커피를 탔다. 그 땡볕에서 싸우면서 화 냈던 걸 이제야 늦게 식히기라도 할 것 처럼. 케이크는 다 먹었다. 동생이 슬금슬금 식탁에 따라 붙어서 두 조각을 해치우니까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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