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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코운

全体公開 13107文字
2026-03-06 18:09:25

현패 대학AU

Posted by @_ntki_rh





세계관 이야기: 넷이 같은 대학 다니고 같이 살고있음




*




"사스가~! 부탁이야, 나랑 이번 단체 미팅, 같이 나가줘!"
강의가 끝나자마자였다. 노트북을 닫고 가방에 넣으려던 오지의 손이 멈췄다. 눈앞의 남자는 두 손을 싹 모으고 허리까지 굽혀 보이고 있었다. 오지는 그 꼭대기만 보이는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난 그런 데 흥미 없다니까."
오지는 시선도 주지 않고 노트북을 가방에 밀어 넣었다. 지퍼를 잠그는 손놀림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빨리 짐 싸고 자리를 뜨고 싶다는 게 온몸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치만 여자애들이 너를 꼭 불러야 온다 했다고..."
그럼 그 미팅에 가는 의미가 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기에게 그런 딴지를 거는 것조차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이 녀석은 과 모임 때마다 여자애들한테 하도 치근덕대길래, 후배나 동기 애들을 몇 번 도와준 적이 있다. 슬쩍 사이에 끼어들어 화제를 돌리거나, 귀찮은 자리에서 빠져나올 핑계를 만들어주고 있는데도 눈치 없이 늘 이런다.
"부탁이다, 앉아 있기만 해도 되니까!"
동기가 강의실 책상 위로 상체를 쭉 내밀며 오지가 일어서려는 걸 막아섰다.
"귀찮게 구는구만..."
오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제 뒷머리를 마구 긁어 부스스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텅 비어가는 강의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갈 테니까, 이후론 두 번 다시 부탁하지 마."
"! 진짜!? 알겠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고맙다!"
앞으로도 같은 강의를 듣고, 건너건너 아는 친구들이 많은 녀석과 굳이 나쁘게 얽혀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도 받아냈으니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이때를 언급하면 된다.
"오늘 미팅에 나온다는 애들이 바로 모델과 애들이라고~ 여자친구 만들기에 관심 없다는 너도, 보면 생각이 바뀔 걸?"
동기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주먹을 불끈 쥐는 꼴을 보자, 오지는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미팅 날짜는 언젠데?"
건성으로 물었다. 동기는 뒤따라오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이제 2시간 남았어, 빨리 가자!"
오지의 발이 딱 멈췄다.
"아? 잠깐, 뭐? 오늘? 2시간!?"
험악한 인상으로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하지만 동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오지의 팔을 낚아채고 있었다. 당황해서 굳어버린 오지를 그대로 질질 끌며 복도를 걸어갔다.


*


"코운 선배, 짐 많아 보이는데 제가 들어드릴게요!"
코운과 이사쿠는 번화가에서 쇼핑백을 한아름 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사쿠가 허둥지둥 팔을 뻗어도 코운은 여유롭게 팔을 돌리며 손을 내저었다. 손목에 걸린 쇼핑백들이 느슨하게 흔들리는데도, 코운의 걸음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괜찮아~ 옷이라 무겁지도 않고. 내 거니까 내가 들게."
그 말에 이사쿠는 멋쩍게 바라보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가 눈에 걸린다.
"사스가 선배...?"
이사쿠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코운은 앞서 걸어가다 마치 찔린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웃어 보였다.
"아니, 오지의 경우는 내기에서 진 거라 그냥 스스로..."
"그게 아니라..."
이사쿠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유리창 쪽을 턱짓했다. 코운도 의아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올리며 시선을 따라갔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라운지 소파 근처에 오지가 서 있었다. 여러 남녀에 둘러싸여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여자 쪽 누군가가 말을 걸자, 오지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동기 분들인가요?"
이사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코운은 잠시 말 없이 안쪽을 바라보더니 느릿하게 팔짱을 꼈다.
"남자애들 쪽은 맞는데, 여자애들 쪽은..."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코운이 유리창에서 시선을 떼며 무심한 듯 내뱉었다.
"처음 보네."
짧은 한 마디였다. 코운의 목소리엔 감정이라곤 실려 있지 않았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서늘하게 울렸다.


*


"다녀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토메사부로가 뒤늦게 귀가했다. 현관문이 열리며 인사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한 손에는 하얀 종이 상자가 들려있었다. 토메사부로는 신발을 벗더니 그대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어 열었다.
"오늘 가게 근처에 새 빵집이 생겨서 케이크를...."
한 발 들어선 순간, 신나게 웃던 토메사부로의 표정이 싹 굳었다.
집안의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거실의 TV는 틀어져있지만, 누구 하나 말이 없다. 재미 없다는 듯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코운과,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듯 알림이 계속 울리는 오지가 보였다. 분명 시끄러운 상황인데도 무거운 침묵이 방 안을 꽉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토메사부로의 들떠 있던 눈이 빠르게 방 안을 훑는다.
"뭐지...?"
중얼거리듯 내뱉었을 때, 옆에서 소매가 잡혔다. 이사쿠였다.
"토메사부로... 잠깐."
"이사쿠?"
이사쿠의 눈이 거실 안쪽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다시 토메사부로를 향했다. 고개짓으로 복도 쪽을 가리킨다. 토메사부로는 입을 열려다 이사쿠의 표정을 보고 말을 삼켰다.

.
.

"낮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토메사부로의 황당한 얼굴에 이사쿠는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뒤로 어떻게 됐는데?"
토메사부로가 복도 벽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눈빛은 진지했다. 거실 쪽을 한 번 힐끗 살피고는 다시 이사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스가 선배가 밖에 있는 나랑 코운 선배를 발견하더니 바로 달려나오셨거든... 그러더니..."


-


"코운... 이사쿠!?"
"안녕하세요...~"
이사쿠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오지의 기세에 반걸음 물러서며, 슬쩍 코운의 눈치를 살핀 뒤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코운은 대답 없이 오지가 아닌 창가 너머 식당 안을 바라보았다. 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일곱 명의 남녀가 하나같이 이쪽을 바라본다. 여자 쪽 몇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 속삭이기도 했다.
"모델과 애들이네..."
코운이 낮게 중얼거렸다. 시선은 여전히 창 안쪽에 머물러 있었다.
"네..."
"과팅인가?"
"...그렇습니다."
오지가 반사적으로 답했다. 목소리가 건조하게 잘렸다. 시선은 코운의 얼굴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정확히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으니, 식당 안에서 같이 있던 남자 둘이 밖으로 나왔다. 코운에게도 익숙한 동기들이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오지 뒤에 나란히 늘어섰다.
"야, 야... 사이온지... 오해야."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손을 앞에서 휘저으며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래, 저기 안에 있는 쟤가 잘 모르고 그냥 부른거라고~"
다른 한 명이 거들었다. 모두가 코운의 표정을 슬금슬금 살피며 억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안에 남는 남자 한 명은 여전히 의아해하는 얼굴이다. 코운도 저 친구와는 안면만 있었을 뿐, 인사도 안 해본 사이긴 했다.
"사스가 녀석은 머릿수만 채우러 온 거거든."
"우리는 허락 안 맡고 와도 되냐고 했다니까?"
다른 한 명이 거들었다. 둘 다 코운의 표정을 슬금슬금 살피며 억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에 남아 있는 남자 한 명은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운도 저 친구와는 안면만 있을 뿐, 제대로 인사를 나눠 본 적도 없는 사이긴 했다.
"너네 왜 자꾸 코운한테 그런 소릴 하는건데?"
"왜겠냐, 애초에 네가 여길 오면 안 되지!"
오지가 낮게 쏘아붙였지만 둘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애들의 시선까지 유리창 너머로 계속 느껴지는 통에, 정신없는 상황만 이어졌다.
"... ..."
"코운 선배..."
이사쿠가 조심스럽게 코운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서 코운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코운의 얼굴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 읽을 수 없는 감정이 섞인 처음보는 모습에, 이사쿠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찰나였다. 코운의 표정이 금세 평소처럼 부드러운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곤 가볍게 한 발 다가서더니 오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이런 것까지 왜 나한테 허락을 맡아? 그냥 더 놀고 오지 그래."
코운은 웃으며 말했다. 평소 보여주는 사람 좋은 얼굴과 목소리였다.
"가자, 이사쿠."
"아, 네...!"
"코운...!"
이사쿠는 팔을 뻗는 오지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누구의 불운인가, 하고....


-


"그건 진짜... 큰일이었네..."
토메사부로가 낮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거실 문을 살며시 열어 얼굴만 내민 채로 다시 안쪽을 살폈다. 문틈 사이로 거실의 풍경이 보였다.
코운은 소파 한쪽 끝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보고 있는 시늉일 뿐, 채널도 바꾸지 않은 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미세하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더이상 버튼을 누를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광경에 토메사부로는 조심스럽게 문을 다시 닫았다.
"그 뒤로 코운 선배는 별 말 없이 TV만 보시고... 사스가 선배는 휴대폰만 보셔서 두 분이 한 마디도 안 하고있어..."
이사쿠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토메사부로는 턱을 괴며 생각을 정리했다. 코운 쪽은 일방적으로 대화를 차단하는 아우라를 내보이고 있지만, 오지 쪽도 마찬가지로 휴대폰에 매달려 있으니 서로 말을 꺼낼 틈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코운 선배가 그렇게 말하고 가버렸으니까... 혹시 사스가 선배, 그 뒤로 미팅 끝내고 와서 지금 상대랑 연락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사쿠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토메사부로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스가 선배는 그러실 분이 아니야. 동기 선배들이랑 연락하고 있는 거 아닐까? 나라도 '너 괜찮은 거 맞냐'... 이런 연락 할 것 같고."
토메사부로의 말에 이사쿠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스가 선배는 항상 코운 선배만 찾으셨는데..."
본인이 더 섭섭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토메사부로는 이사쿠를 힐끗 보다가 시선을 거실 문 쪽으로 돌렸다.
"동기 선배들이 '머릿수만 채우러 왔다'고 하셨다며."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코운 선배가 저렇게 반응하실 만한 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런가."
이사쿠의 대답이 힘없이 떨어졌다.
"아무튼, 이런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당분간 조용히 있는 게 낫겠어."
"...응."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토메사부로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던 케이크 상자를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이건 따로 먹어야겠다. 선배들 건 냉장고에 두자."
토메사부로가 상자를 살짝 열어 보였다. 안에는 네 조각의 케이크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이사쿠 네가 좋아하는 걸로 사왔다고."
"정말이네...! 고마워, 토메사부로~"


*


"사스가 선배랑 코운 선배가?"
토메사부로와 이사쿠의 이야기를 들은 센조는 의외라는 얼굴로 컵을 들어 올렸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삼켰다.
다음 날, 토메사부로와 이사쿠, 센조는 오랜만에 각자의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다. 원래는 주말에 잡혀 있던 약속이었지만, 연락이 오늘로 앞당겨진 것이다.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각자 음료를 앞에 두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어젯밤 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래도 하루 지나면 분위기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냉랭하더라..."
토메사부로가 아이스티의 빨대를 손가락으로 돌리며 말했다. 얼음이 잔 안에서 달그락 부딪혔다.
"게다가 코운 선배가 문을 잠근 건지, 사스가 선배는 거실 소파에서 주무신 것 같았어."
이사쿠가 끼어들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거실에 나갔을 때의 광경을 떠올리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담요와 구겨진 쿠션,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코운의 방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군. 그래서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약속 시간도 당긴 건가."
이사쿠는 정답이라는 듯 멋쩍게 웃으니, 센조는 잠시 컵 위에 시선을 떨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검지로 컵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이윽고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사스가 선배가 미팅에 나갔다고 해서, 왜 두 분이 싸우게 된 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토메사부로와 이사쿠의 고개가 동시에 같은 각도로 기울어졌다.
"왜냐니, 바람이나 다름없잖아."
이사쿠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왜 바람이냐고. 코운 선배가 사스가 선배한테 뭔데?"
"? 소중한 분이시지."
이사쿠는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센조는 대답을 들을수록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곤 옆에 앉은 토메사부로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토메사부로도 이사쿠와 똑같이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며 왜 그러냐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센조의 관자놀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왜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묻는 거냐. 고등학교 때도 어떻게 지냈는지 봤잖아."
"내 말 은! 두 분이 사스가 선배가 한 행동이 바람으로 치부될 만한 사이냐는 거다! 즉, 사귀는 사이였나?"
바보 둘을 상대한 센조가 결국 폭발한 듯 언성을 높였다.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쏠렸다. 하지만 이글이글한 센조의 기세에도, 쏠리는 시선에도, 토메사부로와 이사쿠는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싸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거의 동시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고개를 맞대며 바짝 붙었다.
"이사쿠, 혹시 선배들이 연인사이였던가?"
"...들은 적 없는 거 같아..."
속삭이는 둘의 목소리에 센조는 컵을 쥔 채 허탈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토메사부로와 이사쿠는 여전히 고민에 휩싸인 얼굴이다.
"그럼 고등학교 때부터 보여줬던 그 행동들은 다 뭐지...?"
"사스가 선배... 코운 선배가 드린 초콜릿 받고 엄청 기뻐하셨잖아."
"맞아, 하루 종일 들고 다니셨지."
토메사부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두 사람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는 잊은 지 오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증거를 하나씩 쌓아 올렸다.
"대학도 당연한 듯이 둘이 같은데 가셨고..."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듣고 있던 센조가 끼어들었다. 토메사부로와 이사쿠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추리를 이어갔다.
"그럼 왜 같이 살고 계신 거지?"
"너희도 같이 살잖아."
이번에도 센조의 딴지는 소용 없는지 둘은 으음, 하는 목소리만 낼 뿐이다.
"무엇보다 둘이 동침도 하시는 걸...!"
이사쿠가 결정적이라는 듯 손바닥을 탁 쳤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긴 해, 이사쿠."
토메사부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사쿠는 고개를 돌려 토메사부로를 보았다가, 이내 손을 내저었다.
"토메사부로랑 나는 다르지. 아, 대체 뭘까..."
"아니 이사쿠, 지금 토메사부로 네가 한 말에 상처 받았다고."
센조가 눈짓으로 토메사부로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사쿠는 센조의 말이 들리지도, 옆에 앉은 토메사부로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휩싸였다.
센조는 한심하다는 듯 이사쿠와 토메사부로를 번갈아 보다가,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



"사스가 선배, 오늘도 거실에서 주무시나요?"
저녁이 되어 돌아와서도 두 선배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어제 별 말이 없던 코운은 토메사부로와 이사쿠에게 평소처럼 대했지만 그 모습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결국 모두가 목욕을 마치고 이제 취침에 들어선 시간까지도 그 분위기가 이어지더니, 각자 방에 돌아간 후 오지 혼자 거실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이사쿠가 오지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어? 아니, 뭐..."
이사쿠 옆에 있던 토메사부로도 시선을 마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계속 여기서 주무시면 감기 걸리실 거예요... 저희 방에서 주무시는 건 어때요?"
이사쿠의 제안에 오지는 멋쩍은 듯 손을 저었다.
"괜찮아, 그 침대에서 셋이 어떻게 자냐."
"그건..."
오지의 말에 토메사부로는 그 침대에 셋이 자는 상상을 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제가 코운 선배 방에서 잘테니까 사스가 선배는 토메사부로랑 주무시는 건 어때요?"
"엥?"
토메사부로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이사쿠는 '왜?'하고 되묻는다. 그 반응에 토메사부로는 움찔하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이사쿠의 마음대로) 결정이 나자, 이사쿠는 자기 베개를 꼭 껴안고 오지와 코운의 방 문앞에 섰다. 그리고 닫힌 문 앞에서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주먹을 가지런히 모아 가볍게 노크했다.
"코운 선배, 이사쿠예요. 들어가도 될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들어오라는 대답이 들렸다.
문고리를 돌린 이사쿠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잠겨있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오지도 이걸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밖에 있었던 건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스쳤지만, 이사쿠는 생각을 떨쳐내며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이사쿠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그리고 토메사부로와 오지는 그런 방 앞을 바라본다.


"무슨 일이야?"
코운은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무릎 위에 펼쳐둔 휴대폰에서 시선을 들었다.
"아니~ 오늘은 선배 방에서 같이 자도 될까요? 토메사부로랑 사스가 선배가 밤새 할 말이 있는 거 같아서요."
이사쿠는 멋쩍게 웃으며 베개를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최대한의 무해함을 어필하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코운은 그런 이사쿠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좋아, 이쪽으로 와~"
코운이 침대 한쪽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사쿠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후딱 다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둘이서 할 얘기가 있다 했다고?"
"네!"
코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묻자, 이사쿠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의 관한 거?"
"네! ...네?"
밝게 대답하던 이사쿠의 목소리가 뒤늦게 작아졌다. 한 박자 늦게 깨달은 얼굴로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더니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너희한테까지 눈치 줄 생각은 없었는데, 뭔가 미안."
코운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이사쿠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이번엔 사스가 선배가 조금 너무하시기도 했고..."
"그게 아니야."
단호한 목소리였다. 평소의 느긋하고 부드러운 어조와는 전혀 달랐다. 눈치를 살피던 이사쿠가 움찔하며 눈을 끔뻑였다. 코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그 날 생각했어. 잘못 됐던 건 나라고."
"엇, ...네?"
"이사쿠도 오지가 그런 자리에 나가면 나한테 허락 받아야 한다 생각해?"
"그야..."
대답을 잇지 못하던 이사쿠는 문득, 낮에 센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게 왜 바람이냐고. 코운 선배가 사스가 선배한테 뭔데?'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 이 방 안의 공기 속에서 다른 무게로 내려앉았다. 이사쿠는 베개를 천천히 끌어안으며 얼굴을 살짝 파묻었다.
"저기, 그... 사스가 선배랑 코운 선배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신... 거죠?"
코운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이사쿠의 눈에는 선명하게 들어왔다. 코운은 고개를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뭐... 그러니까 오지가 나한테 그런 걸 보고하거나 허락을 맡을 의무도, 내가 화낼 이유도 없는 거야."
목소리는 평온했다. 너무 평온했다. 마치 계속 혼자 반복해 되뇐 말처럼, 감정이 닳아 매끈해져 버린 문장이었다.
"하지만..."
"어제 그 많은 사람들이 오지를 타박하면서까지 내 눈치를 보는데, 그게 썩 반갑지도 않았고..."
코운이 시선을 내린 채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르는 애들은 나나 오지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 말에 이사쿠도 입을 다물었다. 어제 창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낯선 시선들이 떠올랐다. 코운이 웃으며 오지의 어깨를 두드리고 돌아섰을 때, 그 사람들 눈에 비친 건 어떤 장면이었을까.
"하지만 저는 두 분이... 그만큼 사이가 좋아서, 라고 생각해요."
이사쿠는 조용히,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오지는 그때 코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기들이 변명을 늘어놓을 때도, 주위의 시선이 쏠릴 때도, 창피함 같은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코운에게 다가가려고만 했다. 그 모습이 이사쿠의 눈에는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코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불을 미세하게 쥐고 있다.
"오지랑 계속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건, 내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리고 또..."
코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다 문득 입을 다물었다. 이사쿠는 슬쩍 코운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을 잇지 못하는 코운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모습에 무언가 번뜩, 떠오른 듯 뇌리에 스쳤다.
'사스가 선배가 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리셨구나...!'
계속해서 안절부절못했던 이사쿠의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코운이 화가 나서 오지를 밀어낸 게 아니었다. 다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계속 부려먹었으니까, 애인을 만들고 싶어도 본능적으로 눈치 본 거겠지."
"걱정마세요, 사스가 선배는 코운 선배 뿐이실 거예요!"
이사쿠가 눈을 반짝이며 코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베개가 무릎에서 굴러 바닥에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코운은 갑자기 잡힌 손을 내려다보더니, 당황한 얼굴로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딱히 그런 생각은..."

"이사쿠 말이 맞아!"
문이 벌컥 열리더니 큰 소리와 함께 오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스가 선배!?"
그 뒤로 토메사부로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허둥지둥 따라 들어온다. 오지의 등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양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토메사부로...!"
"오지..."
코운이 낮게 중얼거렸다. 잠깐 놀란 기색이 스치더니, 이내 눈이 찌푸려지더니 이불 밖으로 나와 팔짱을 끼었다.
"누가 들어오랬어?"
"어? 아니, 미안..."
오지의 말이 한 번 끊겼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코운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치만 내가 말을 걸지 않고 있었던 건 네 눈치를 봐서가 아니야. ...스스로의 반성일 뿐이다!"
목소리가 방 안에 꽉 찼다. 너무 커서 오히려 쩌렁쩌렁 울렸다. 벽에 기대어 있던 토메사부로가 어깨를 움츠렸고, 이사쿠는 눈을 끔뻑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뭐?"
코운도 당황한 듯 되묻는 모습이다.
"계속 같이 나가달라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해도, 어쨌든 간 건 내 선택이고, 그로인해 좋아하고 있는 코운한테 못할 짓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 ...."
오지는 마치 할복을 결심한 사람마냥 눈을 꽉 감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사쿠는 스리슬쩍 떨어트린 베개를 줍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 녀석들한테도 말했어. 내가 좋아서 한 거니까 코운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서 부담 주지 말라고..."
오지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울렸다. 거칠었지만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또박또박했다. 계속 말을 잇던 오지가 눈을 떴다. 그리고 코운의 얼굴을 보자, 말이 절로 끊겼다.
"코운...? 왜 그래?"
오지의 당황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토메사부로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방 문을 꼭 닫고 나온 토메사부로와 이사쿠는 숨을 내쉬며 방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잘 됐군..."
"으응, 예상 못한 전개였지만..."
이사쿠가 닫힌 문을 힐끗 보더니, 슬쩍 눈짓을 하며 눈썹을 늘어뜨려 웃었다.
"그래도, 코운 선배가 부럽네~"
그 말에 토메사부로는 걸음을 옮기다 멈추었다. 이사쿠의 옆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사쿠는 저렇게 고백하는 게 좋아?"
토메사부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눈이 살짝 반짝이는 것 같았다.
"뭐가...?"

이쪽도 언젠간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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