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tjdcnd
침수
浸水¹ 어떤 곳으로 스며들다
“카지야마 후우타, 당신은 작금의 상황을 어찌 생각하시나요?”
뜬금없는 말이었다. 툭 튀어나온 목소리는 갈피를 잃고 힘없는 끝맺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무엇을? 되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마네의 눈은 이미 허공을 보고 있었고, 그 허공엔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보던 풍경, 항상 보던 공허. 후우타는 입을 달싹거리다 꾹 닫았다. 아마네가 원하는 건 위로가 아니고 아첨 또한 아니었고,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 범부의 시선으론 알 수 없었다. 감히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생각도 아닐 것이다. 어찌 그분이 떠올리는 진리에 범접할 수 있으리. 또한, 진리라는 건 참혹하기도 해서 사람의 빛을 줄이기도 했다. 후우타의 눈엔 아직 그분의 빛은 찬란하고 또 건재하였으나, 별개로 검게 가라앉은 명랑한 녹색 눈동자는 언제부터 저랬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이며, 자신은 이제 새로 태어난 아마네의 신자였으니 믿고 따르는 길밖에 없다. 고통에 허우적거리면 그 옆에 서서 받침대가 될 뿐이다. 후우타는 자신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 믿었다. 사실 후우타에게 있어 신앙이니 뭐니 그런 소꿉장난 같은 건 별 믿을 게 되지 못했다. 후우타가 믿는 건 아마네, 그리고 그런 아마네를 믿는 자신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엔, 이미 아늑한 녹음의 늪에 몸이 잠겨있었다. 벗어나기엔 끈적거리고 묘하게 온정이 담긴 늪이라 함부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자신 또한 이 늪의 일부라고 착각한 순간부터 후우타는 의심을 거두기로 했다. 이미 더러워진 몸과 늪에 있는 기간 동안 경직된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 아프기까지 했다. 이 늪을 유지하는 요소는 늪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 연민은 언제까지나 사랑으로 이루어져 끊어내기도 어려웠다. 그렇기에 후우타는 늪을 추궁하길 부정했다. 그 대신, 늪을 안았다. 그럴수록 빠져드는 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자신을 품어주는 늪에게도.
뻣뻣하게 뻗은 아마네의 목이 정면을 보고 있다. 삐끗빼끗하게 잘린 머리카락은 불규칙하게 흔들린다. 묘한 균형은 중심도 묘했다. 여전히 공백을 유지한 채로 잘 보이지도 않는 먼지 입자를 바라본다. 후우타는 아마네에게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아첨도 하지 않았다. 공백은 이어진다. 어색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하늘이 움직이고 구름이 움직이고, 그 모든 것이 움직이는 세상의 순리에서 그들은 멈춰 있었다. 후우타는 아마네의 옆모습에서 눈을 떼었다. 대신 가만히 서 있었다. 구제불능의 한쪽 안구는 가려져 시선의 옆을 보기가 퍽 불편했는데, 아마네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니 불편함이 가시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건 무엇이기에 이리 단순한 걸까.
바람이 꽉 막힌 공간에서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지도 미지근하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은 머리카락만 흩날리게 할 뿐이었다. 쓸모없고, 가치 없고. 무엇을 위한 흐름일까? 그런 건 따져봤자 아무 진실에도 도달할 수 없다. 이유란 건 없으니까. 이유조차 인간이 세계를 깨닫기 위해 멋대로 만들어낸 규칙일 뿐이라고. 아마네는 그렇게 배웠으므로 눈을 감았다. 고요한 상자에 틀어박힌 갑갑함이 신체를 옭아맨다. 매일마다 들리는 원망과 비린내가 뇌내 이미지를 잠식할 때 즈음, 어깨에 슬며시 온기가 얹어졌다. 차가워지지도 않고 따갑지도 않은 온기라는 건 꽤 기꺼운 것이라서, 아마네는 어깨에 힘을 풀었다. 겹겹이 입은 옷 아래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불쾌했다. 이 또한 그저 지나가는 시련이니 괜찮았다. 괜찮다고 배웠으니까.
둘은 여전히 조용했다. 뜻 깊은 대화는 이제 나누지 않았다. 호재일까? 둘 다 알 수 없었다. 이젠 그것이 둘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 시간을 보내왔다. 이 영문 모를 답답한 세계에서 쭈욱. 어쩌면 영겁일 수 있는 시간을 하염없이 보냈다. 의아한 것이라면, 둘의 세계는 굳건하면서도 서로의 영역이 확실히 구분 지어져 있었다. 아마네는 멋대로 넘나들 수 있으나 넘으려 하지 않고, 후우타는 넘나들 수 있다는 선 자체도 느껴지지 않지만 넘어갈 수 있길 바랐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의미에 서로가 상대와 상대를 구원하길 바랐다. 그 오만한 소망은 둘에게도 그리 도움 되지 않는 갈망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행복했다. 행복幸福을 논해도 괜찮을까? 적어도 평온하긴 했다. 둘에게 적이란 건 사방에 가까웠고, 서로는 적이 아니라 아군이고, 아군 이전에는 한 탬플릿에 갇힌 이단자들이었으니. 둘만 있는 세계는 흔들거리고 불안정했지만 평화로웠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는 세계는 이상적이었다.
“…밥은 먹었어요?”
“아직, 후우타씨는 어때요?”
“안 먹었는데 그렇게 배고프진 않아서.”
“……그렇다면 안 먹는 게 맞죠. 그렇지 않나? 사치는 좋지 않으니까.”
“그 정도는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네는 후우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돈은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총명한 어린아이의 눈에 한심함이 드러났다. 다 큰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는 야유가 필터 없이 쏟아졌다. 후우타는 그런 아마네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마네는 어렸고, 성장기고, 이런저런 여러가지 이유를 들일 수 있을 정도로 영양소가 충분한 식사는 중요해 보였으니까. 물론 후우타의 세계에서 아마네에게 세상의 이치를 내미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고, 멋대로 가져와서 같이 먹자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착한 아이를 고집하는 아마네의 가드는 강제성에 약하기 때문에 통했다. 이따금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가져다 주면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안 그런 척 미세하게 올려진 입꼬리는 퍽 순수해 보였다. 후우타는 아마네의 순수를 사랑했고 애정했으며, 궁극적으로 후우타가 아마네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마네는 자신의 순수함을 그리 선호하진 않았다. 순수하다는 말이 애 취급처럼 느껴졌으니. 세상 물정도 모른다는 말로 들리기도 해서 아마네의 자존심을 긁었다. 무지는 죄지만 용서받을 수 있고, 그러나 자신은 배웠으니 무지하면 안 되었다. 아마네가 가진 강박은 자신을 상처 주며 보호하려 만든 이치에 가까웠다. 후우타는 그 이치에 갇혀 있는 아마네가……
둘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이라기엔 형태도 잘 갖추지 못한 희끄무레한 건물이었다. 간판도 없었고 메뉴판도 없었다. 안내가 불친절할수록 맛집이라던가? 후우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많이 없었다. 실력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이곳에선 식당 검색을 해보았자 의미가 없으니까. 가게에 어떤 메뉴가 있냐 물어보면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후우타는 성장기엔 고기라는 이유로 스테이크를 시켰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네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혼낼 광경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식당의 투명도와 상상의 불투명도는 신기할 정도로 비례했다. 상상이 현실인 것처럼 선명해지는 순간, 시킨 메뉴가 나왔다.
“먹자.”
“네.”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후우타가 보기에, 그 포크와 나이프를 요상한 모양이었다. 묘하게 뭉특한데 끝은 아주 뾰족했다. 잘 잘리나 싶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결대로 잘랐는지 잘 잘리지 않는 고기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인상을 찌푸려도 잘리지 않아, 후우타는 무의식적으로 아마네를 보았다. 아마네의 미간은 잔뜩 풀어져 있었다. 그것이 긍정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얼굴에는 홍수가 나 건조한 땀으로 치덕치덕 물광을 내고 있었고, 아마네는 가릴 틈도 없이 눈을 꾹 감으면서도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으로 그러쥐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의식이 끊긴 것처럼 고개를 확 거세게 숙이더니 올리지 않았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옅게 들리고 식당의 투명도는 올라가며, 흐물흐물해지기까지 했다.
쨍그랑! 순식간에 식기는 전부 바닥에 뒹굴고 있다. 아마네의 고기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스테이크의 형태가 전부 무너졌다. 구운 고기보다는 다진 고기 같았고, 짙은 붉은 갈색의 육즙은 고이고 고여 더는 음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마네의 감각으론 고기 비린내가 코끝에 스쳐오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후우타는 아마네의 옆으로 가 아마네의 모습을 가리듯 수그리곤 등을 토닥였다.
“우……으에, 우웩…….”
“…….”
아마네의 입에선 아무 내용물 없이 위액이 올라왔다. 파르르 떨리는 손은 빨갰고, 입에서 토해지는 투명한 액과 눈에서 나오는 투명한 액이 섞여 짜고 시큼한 냄새가 줄줄 흘렀고 눈물은 막힌 것마냥 한두 방울 겨우 떨어졌다. 눈물방울과 위액은 쏟아져 스테이크 소스와 육즙에 섞였고, 아마네의 귀에는 비웃는 소리가 빙빙 돌았다. 이어서 원망, 질타, 분노, 슬픔, 억울함, 애원, 비명, 동정, ….
고개를 더욱더 숙이고 마치 기도처럼, 용서를 비는 무언가처럼, 어떠한 걸 모방했다. 아마네의 헐떡임은 아주 조용하고 소란스럽게 진행되었다. 어깨가 크게 들썩이고 목이 조이는 소리가 히끅히끅 울렸다. 슬픔과 두려움이 섞인 전신은 지체없이 떨렸고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어깨에 닿았던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아 떨림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심해졌다.
“헉, 끄흐, 하아…….”
“……으.”
“히, 으, 웁, 우욱… 흐읍, 흐윽.”
소리는 늪에 빠진 거처럼 들리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소리도, 아마네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다. 사라진 온기에 본능적으로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은 충혈이 될 정도로 내리기 시작했다. 뺨이 줄기를 따라 차가워지고, 미지근해지고, 뜨거워지고. 그런 무의미한 반복에 뺨이 따가워진다. 초점이 사라진 눈에 담기는 흐릿한 시야에선 붉은 머리가 보였다. 괴로워 보였다. 아니, 기쁜 걸까. 흐릿한 시야, 흐릿한 판단력, 흐릿한 무언가, 흐릿한 …무엇 하나 명확한 게 없었다. 그대로 세상은 돌았고 삼원색이 섞여 검은색을 만들어냈다.
“03, 같이 행복해질까.”
“좋아요.”
어두운 밤, 흐릿하게 뜬 달. 그런 달을 더 흐릿하게 가리는 구름 아래 서 있는 두 남녀는 새하얀 옷을 입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시하는 시선에 서로는 서로에게 눈을 떼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말을 꺼내길 주저했다. 수줍어 보이는 실루엣은 마치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에는 토끼가 산대요.”
“그런가요?”
“사실 아닌 건 알아요. 그런 걸 믿는 인간이 아직도 있을까요? 그런 미신에 매달리다니, 바보 같아.”
“그럴지도 모르죠.”
“확신하세요, 후우타씨.”
아마네의 눈동자가 흐릿한 달빛 아래 명확한 안광을 품었다. 또렷한 시선은 붉은 후우타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붉은 자국에 머물렀다. 붉다기보다는 녹색과 적당히 섞인 보랏빛에 가까운 색이었는데 아마네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미더웠다. 그렇다고 치료할 수는 없어 기도했다. 낫는 건 늦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그 멍청한 미신이 맞다면요, 후우타씨.”
“제게 친구가 생길까요?”
후우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생길 거라는 섣부른 말은 하지 않았다. 토끼와 어떻게 친구가 되냐는 태클도 걸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그가 모모세 아마네였으니까. 이런 낭설에 동의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고민도 이젠 쓸모없었다. 전부 의미가 없고 의미가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아주 까맣고, 드문드문 비추는 파도의 결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위협적이면서도 감미로워서 몸을 맡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럼 갈까요.”
“응.”
후우타는 아마네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아마네의 가벼운 몸무게는 바다 위를 잠시 걸었다가 가라앉았다.
“수영은 할 줄 알아요?”
“…….”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뚱해진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고, 그들의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목이 잠기고 입이, 코가, 귀가, 눈이, 머리가. 무릎이, 배가, 어깨가 잠길 즈음. 그는 그를 건져내려 했고, 그는 그를 끌어들였다. 차디찬 바닷물은 염증이 날 정도로 전신을 침투해 내장을 빵빵하게 만들었다. 숨을 쉬기에 버거웠고 부푼 전신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갈망? 욕심? 삶에 있던 중 가장 욕구가 쏠려 오는 둘이었으나, 손은 놓지 않았다. 살려고, 살지 않으려고. 동상이몽의 충동은 달빛 아래 바닷속에서 서서히 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