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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ot

全体公開 2 6669文字
2018-04-29 00:05:50

슈레이

- 아카아무 전력 120분 “붉은 실” 참가작
- 세라 가家 혈통의 설정 날조 주의







아카이 슈이치는 건너편에 앉은 붉은 갈색머리의 여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신보다 앉은 키가 작았지만 어린 아이의 몸을 한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침묵이 늘어진 테이블을 음료가 빨대를 통과하는 소리가 채웠다. 햇빛이 내려앉은 카페의 구석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믿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사촌이고 십대 초반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천재다. 본인의 말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어라, 놀라지 않네?”
뭐.”


아카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몇 년을 현장에서 구르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총탄이 지나간 시체나 불법 거래 약물처럼 거칠고 피나 화약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지, 운명의 붉은 실 같은 동화적인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


모계로부터 이어지는 통찰력은 차라리 동물적인 육감에 가까웠다. 타고난 직관은 이모인 엘레나나 사촌인 그녀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면 더욱 빛을 발했다. 게다가 시호는 하이바라 아이로 지내던 시절, 감만으로 그녀를 노리는 조직원들의 존재를 알아채곤 했다.

모친인 메리은 진실을 꿰뚫는 추리능력으로 영국 비밀정보국에서 마녀라는 이명을 떨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 또한 확실히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언젠가 비슷한 소리를 했던 연인이 떠올라 아카이는 미소를 지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하나쯤 더 본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단 얘기야.”
“흐음. 당신다운 말이네.”


즐거운 듯 포크를 집어든 시호가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한낮의 햇살이 쏟아졌다.

경위는 이러했다. 이틀 전 잠에서 깬 그녀는 이불 위 자신의 왼손 약지에 묶인 붉은 실을 발견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실은 손을 흔들면 따라 출렁였고 팔을 뻗으면 같이 당겨졌다.

눈에는 보이되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해 미야노 시호는 이것이 동아시아권에서 설화로 익히 알려진 운명의 붉은 실이라고 추론했다. 가설은 증명되기 위해 존재하며, 실험은 그녀의 특기였다.

운명적인 사랑이라면 바로 근처에 좋은 실례實例가 있다. 휴일을 맞아 그녀는 이웃한 쿠도 저의 초인종을 눌렀다. 서재에 있던 두 사람이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나눠낀 반지 밑으로 두 사람의 약지를 잇는 붉은 실을 보고 그녀는 잔잔히 미소지었다. 거 봐, 맞잖아.

그렇게 그녀는 비과학을 직접 경험한 과학자가 되었다. 그렇다해서 생활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릴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운좋게도, 연인과 함께하기 위해 연방수사국 일본지부로 전근해온, 사이가 복잡한 사촌이 그녀에겐 있었다.


“그래서. 오늘 보자고 한 건 그것 뿐인가?”
“흥미 없어?”


거기에 늘 매사에 무심한 듯 구는 그의 당황한 표정을 본다면 재미있을 것도 같았고.


“당신의 약지에도 보이는데 말이지, 붉은 실.”
…….”


그래, 드물게도 고민하듯 인상을 찌푸리는 저 얼굴을.







사촌과의 약속이 있다며, 늦잠을 자는 자신에게 메모를 남기고 외출한 아카이는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서 구두를 벗고 들어서자마자 침실로 직행해 몸을 던져오길래 침대에서 미적이고 있던 후루야는 적잖이 놀랐다.


“아카이? 무슨 일 있었어요?”
별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기엔 파고드는 몸짓이 간절했다. 늘씬한 검은 숫말처럼 키도 큰 주제에 아카이는 가끔 다섯 살 어린애처럼 굴었다. 말없이 등을 토닥이던 후루야가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얕은 숨이 자리를 잡아가자 후루야가 몸을 틀어 그를 짓누르던 아카이를 옆에 뉘었다.


“왜 그래요?”
사랑해.”


진지한 눈빛으로 갑자기 사랑을 고백하길래 후루야는 작게 웃었다. 복잡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귀찮아하면서, 비유에 능했고 자신에 대한 감정은 직구로 부딪쳐왔다. 그녀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것 같긴 한데, 어디까지 물어보면 좋을까.


저도요.”


혹은 어디까지 대답해줄까.

그의 존재를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카이가 후루야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미지근한 품 안에 갇힌 후루야가 등 뒤로 따스히 내리는 햇빛을 맞았다. 좋은 휴일이다. 손을 뻗은 그가 연인의 곱슬진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 손길을 느끼며 아카이 슈이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둘도 없는 현실이며, 틀림없는 자신의 것이다. 햇살같은 후루야의 체취를 느끼며 아카이가 눈을 감았다.


‘거절하지.’
‘어라, 어째서?’
‘그건.’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며 묻는 그녀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카이는 말끝을 흐리며 인상을 썼다. 단칼에 제안을 거절한 것에 비해 이유를 짚는 것이 어려웠다.


이만 일어나지.’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


웃음이 실린 목소리가 얄미웠다. 아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섰다.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는 동안 끊어진 벼락같은 생각들이 뇌리에 번쩍였다.

모친의 말처럼, 오랫동안 망령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삶을 살았다. 한 번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대학의 전공도, 취미나 여가도 조준한 적을 좇는데 최적인 것을 골랐다. 시민권까지 따낸 후에는 연방수사국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명으로 잠입한 조직에선 그를 만났다. 최소의 표현에서 최대의 의미를, 그것도 정확하게 끌어내는 남자였다. 처음으로 목적이나 수단을 떠나 그라는 인물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흥미가 경탄섞인 호감이 되고 욕망에 물든 애정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아니, 운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먼 길을 돌아 결국 그와 함께한다. 침대에 누워 팔을 늘이면 그곳에 후루야가 닿았다. 피부를 맞닿고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 그의 집에 자신의 물건이 늘어나고 두 사람의 기억이 쌓여만 갔다. 게다가 그 어떤 운명이라도 그와 있기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바꿀 의지도 능력도 아카이 슈이치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목 놓은 해바라기마냥 이상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는 어떨까.

호기심과 매혹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만, 그에 대한 애정은 변치않는 상수常數이자 유일한 근根으로 심장에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결코 부드럽기만 한 과정이 아니었으며, 스카치의 일로 걷어낼 수 없는 죄책감은 눈을 흐리는 안개처럼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다. 하물며 오랜 친우를 잃은 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후루야는 목표를 관철하는 것에는 전력을 다하되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서툴었다. 이치에 맞지 아니하면 아무리 원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들었다. 이를테면, 연인 관계의 중단같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 그것이 안타깝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불안을 샀다.

그가 자신의 운명이되 자신이 그의 운명이 아니라면, 자신이 그의 운명을 억지로 빼앗은 것이라면 어떡하지.

사촌의 앞에선 차마 토로하지 못했던 고민이 목 끝을 맴돌았다. 삶인가 죽음인가. 앎인가 무지인가. 진실을 알게 된 햄릿은 결국 미쳐죽었다. 한 번 알게 되면 알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상자 속 그의 고양이가 싸늘한 시체였음을 알게 된다면 과연 자신은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와서 그를 놓아줄 수는 없는데.

후루야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아카이가 속을 앓았다. 그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만나러 가죠.”
“누구를?”
“시호 양.”


아카이는 돌아온 내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아서, 후루야는 답이 보이지 않는 심리전 대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자동차 열쇠를 챙긴 그가 현관으로 다가섰다.


“따라와요.”
“...그녀를 불편해 하는 거 아니었나?”
“당신이 집 안에서 이러고 있는 게 더 불편해요.”
…….”


사고라도 친 강아지마냥 눈치를 살피는 것도 귀엽긴 하지만, 모처럼의 휴일을 저 상태로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 동안 날을 세우고 자신을 경계하던 그녀임을 알기에 가능한 한 얼굴을 마주치는 자리를 피해왔지만, 필요하다면 만나지 못할 사이도 아니었다.


“지금 간다고 당신이 전화할래요, 내가 할까요.”
내가 할게.”


한 번 정한 것은 대부분 끝까지 해내는 자신의 성정이라면 누구보다도 그가 제일 잘 알았다.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며 뒤따르는 모습이 수상쩍었다. 대체 둘이서 무슨 얘기를 했길래 저 자신만만한 남자가 이토록 풀이 죽었단 말인가.


“...어라, 그새 마음을 바꾼거야?”
시끄러워, 지금 간다.”


수화기 너머로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후루야가 곁눈질로 아카이의 표정을 살폈다. 통화가 끝나고 그녀가 지내고 있는 아가사 박사의 연구소로 향하는 내내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기다리고 있던 듯, 열려있던 정문을 통해 흰색 RX-7이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현관 근처에 차를 대자 드물게도 들뜬 표정을 한 미야노 시호가 걸어나왔다.


“어서 와요.”
“오랜만입니다, 시호 양.”


고양이처럼 날렵한 눈매가 나란히 선 두 사람을 훑었다. 어쩐지 시선이 왼손에 가 닿았다고 후루야는 생각했다. 호기심에 반짝이던 녹색 눈동자가 이내 짖궂은 흥미를 잃었다.


뭐야, 재미없어.”
?”
일단 들어와요.”


그녀가 몸을 홱 돌려 연구소 안으로 향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떨어진 핀잔에 후루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 선 아카이가 묘하게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더욱 의아했다.

“자요, 새거예요. 어차피 남이 준 건 잘 안마실테니.”


잠시 자리를 비운 시호는 뚜껑을 따지 않은 녹차를 두 병 가져왔다. 말없이 패트병을 만지작거리는 아카이에게 그녀가 말을 건넸다.


“FBI의 인내심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 실망했어.”
오자고 한 건 그다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잠자코 있던 후루야가 그의 입장에서 타당하기 그지없는 의문을 제기했다. 시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가지로 일이 많았고, 남의 연애사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두 사람, 제대로 마음을 통하고 있는 거야?”
네?”
“거기 앉은 아카이 슈이치는 아직도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후루야가 앉은 채로 몸을 틀어 아카이를 바라보았다. 불안해? 무엇을? 아카이가 시선을 피했다. 그 답지 않았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틀 전부터 운명의 붉은 실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는 그게 집안 내력이라고 했고... 뭐, 보통 사람들보다 감은 좋은 편이니까.”
“운명의 붉은 실이라면, 월하노인 설화에 나오는 그 붉은 실이요?”


당혹을 감추지 못한 후루야가 되물었다. 최첨단 기계로 가득찬 과학 연구소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 그래서 당신들의 실이 궁금하지 않냐고 떠봤더니 저 모양이네. 천하의 FBI 수사관도 연인 앞에서만큼은 꼼짝할 수 없는 걸까.”
“하하.”


양 손의 깍지를 낀 채로 아카이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어쩐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후루야는 애써 그를 외면했다. 잠자코 있던 아카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균등하게 이어져 있어. 단, 평범한 실은 아니야. 오히려...”
?”

“뿌리 같아.”


붉은 실을 보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카이와 후루야를 잇고 있는 것처럼 생긴 것은 보지 못했다. 시호가 제 몫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두 사람의 약지에서 뻗은 실은 무수히 갈라져 서로를 감쌌다. 빈틈없이 얽히고 설킨 것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내리쳐 끊었다고 했지만, 두 사람의 붉은 실은 사막의 개미집보다도 복잡하고 철사보다도 단단해보였다. 단연 뿌리라는 표현이 알맞았다.


바보 커플 같으니.”


시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언니의 죽음은 지울 수 없었다. 아카이는 세상에 남은 몇 안되는 자신의 육친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묵은 감정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버본을 두려워하던 기억도 모조리 사라지진 않았다.

그 때 이 실을 볼 수 있었다면. 저렇게나 깊게 매인 상대가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말렸을 텐데. 그랬다면....

이어지는 생각을 그녀는 애써 멈췄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시호가 축객령을 내렸다.


“재미없어졌어. 바보 커플은 이제 나가주시죠!”


말없이 연구소를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몸을 돌렸다. 학회로 떠났던 아가사 박사가 슬슬 도착할 시간이었다.







적막은 짧고 돌아오는 길은 길었다. 집을 떠나던 때와는 달리 아카이는 더이상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후루야는 운전 중 느껴지는 열렬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사랑해.”
알았어요.”
사랑한다고 말해줘.”


끈질기고 성가시다. 그런데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레이.”


간절한 목소리로 이름마저 부르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찌됐든 자신은 저 남자에게 약하다. 오랫동안 그는 집착의 대상이었다. 두뇌도, 능력도, 무엇이든 갖춘 남자가 오롯이 자신에게만 매달리는 것은 도통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후루야가 생각했다.


사랑해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히 들었다. 창가에 얹은 오른팔에 턱을 괴고 있던 아카이가 잘게 웃었다. 무르익은 햇살이 풍성하게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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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t
1) 뿌리
2) 기슭; 밑바닥
3) 근저, 근본, 본질; 근원
4) 조상
5) (수학) 루트, 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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