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sept0000000
- 아카아무 전력 120분 ‘어린 아이’ 참가작
- 초딩입맛 미구긴 아카이 슈이치 (...) 의 망상입니다.
커피는 블랙. 즐겨입는 것은 검은색 니트모자에 검은색 가죽 라이더 자켓, 회색 바지와 잘 맞는 청보라색 셔츠. 담배는 성냥으로 불을 켠 호프. 타고 다니는 차량은 근육질의 빨간색 포드 머스탱 GT 500.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아카이 슈이치는 얄미울 정도로 근사했다. 잘 단련된 몸에 날카로운 인상이 특유의 고독미를 더해, 가끔은 보고 있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거기에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두뇌와 실력까지 갖춰 매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랬는데,
“…아카이, 지금 뭘 먹고 있는 거예요.”
“응? 테이터 탓츠tator tots다만.”
접시 위에 수북히 쌓인 동그란 베개 모양의 감자튀김을 우물우물 씹으며 아카이가 대답했다.
철야를 마치고 귀가한 토요일 오전 아홉 시 사십 분, 아침 식사를 하기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각이었다. 게다가 영국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그에게 테이터 탓츠는 일본인의 연어구이와 된장국처럼 평범한 아침 메뉴일테다.
다만 후루야 레이가 알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의 아침식사는 표면적이나마 영양 균형을 위해 계란과 소세지, 베이컨 등을 곁들인 것이었지, 지금 식탁에 오른 것처럼 오로지 감자튀김만 쌓아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 저 모습은 마치...
“…사료같아…….”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군.”
포크를 내려놓으며 아카이가 말했다. 표정이 진지한 것이 진심인 듯 했다.
“테이터 탓츠는 미국인의 소울 푸드라고.”
“당신, 귀화했잖아... 그보다… 그렇다고 그것만 먹을 줄은 몰랐죠. 튀긴 감자라니 순 탄수화물에 지방이잖아요. 냉장고에 야채 없어요?”
“…케첩?”
밤샘 업무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후루야가 걸음을 휘청였다. 레이건 시대의 미국 급식업체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하긴 그 쪽은 아직도 피자를 야채로 친다지. 식탁 의자 등받이를 짚고 제대로 선 후루야가 심호흡을 한 뒤 소리쳤다.
“내 일본에서 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루야는 침실로 직행했다. 잠이 쏟아지는 몸으로 가벼운 샤워를 마친 뒤 그가 침대에 쓰러졌다. 우선은 잠이었다.
뭉근히 쏟아지는 햇빛을 느끼며 후루야는 잠에서 깼다. 커튼을 살짝 열던 아카이가 뒤를 돌아보고 조용히 미소지었다.
“깼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드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응, 일어날래. 고마워요.”
모처럼의 휴일을 잠으로 끝낼 순 없다. 늘어진 눈을 비비며 후루야가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활짝 젖힌 아카이가 다가와 침대맡에 앉았다.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길래 후루야는 좋을대로 내버려두었다. 커다란 손이 따끈한 머리카락을 헝크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배고프지 않아?”
“조금. 뭐 있어요?”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었는데.”
“좋아요.”
기지개를 편 후루야가 침대에서 내려섰다. 거실로 나오자 손질 중이었는지 반질반질한 검은 라이플이 탁자 위에서 해를 맞고 있었다. 아무리 아카이 슈이치라도 일본 내에서는 총기 사용을 자제했지만, 해외 작전에 지원을 나갈 때는 변함없는 필수품이었다. 그 옆에 얼음을 채운 위스키잔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침에서 남은 듯한 테이터 탓츠가 몇 개 담긴 접시 또한.
“혼자서 낮술이라도 했어요?”
“자네가 자길래, 조금.”
“흐응.”
후루야가 황혼에 젖은 소파에 앉았다. 시선을 물끄러미 탁자로 옮기던 그가 차갑게 식은 감자튀김을 바라봤다.
“…저런 거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요.”
몇 번이고 총알을 발사했을, 해묵은 라이플. 그의 각인이 박힌 위스키잔에 공들여 얼린 얼음을 띄운 버본 위스키. 거친 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그 둘과 나란히 놓인 테이터 탓츠가 이질적이었다. 버거를 먹어도 프렌치 프라이는 크게 찾지 않던 그라 더욱 의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 지금은 자주 먹진 않지만.”
“소울 푸드인가요...”
상상은 잘 안가지만 아카이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었다. 지금의 반의 반도 안 되는 키로 아장아장 걷던 그의 모습이라면 앨범 속의 사진으로 종종 본 적이 있다. 충분히 사랑받고 자라는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 사진 속의 그는 귀엽고 반짝였다.
편식이라도 했을까. 부모에게 혼도 났을까.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마음 한 구석에서 사랑스러운 아픔을 남겼다. 지금도 함께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자부하지만, 알지 못했던 부분이 튀어나올 때마다 부끄럽기도 했고 자기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력이라니. 후루야가 피식 웃음지었다. 마음 먹은 것을 해내지 못한 적이 드물었다. 한 번 정한 목표라면 어떻게든 달성시켰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라면 자부심이 있다. 후루야 레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보다도, 경창철 경비국 경비기획과 소속의 제로가 지금까지 이뤄온 객관적인 성취가 그를 뒷받침했다.
아카이 슈이치는 어려웠다. 그는 후루야의 앞에 선 커다란 벽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넘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다분히 자기본위적인 보호를 펼쳐 자신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때때로 그 그늘에 기대어 쉴 수 있었다.
“함부로 말한 건 미안해요.”
“…안 어울리나?”
소파 옆에 선 그가 뺨을 긁적이며 묻길래 후루야는 눈을 크게 떴다. 어쩐지 멋쩍어하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아카이 슈이치가?
“어울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당신 취향이잖아요.”
“좋아하는 다른 것들에 비해선 어린애처럼 보인다는 건 알고 있어.”
“…흐응.”
다른 사람의 평가에 그렇게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일이나 사적 영역에서나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멋대로 구는 편이었다. 이래서는 마치...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노력이라도 하고 있어요, 당신?”
“…….”
못들은 척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하길래 후루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여간, 죽음까지 위장한 적이 있는 주제에 최근 들어 거짓말은 더럽게 못하는 남자였다. 술수라면 같은 자리에서 패를 두 번 돌릴 동안에도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할 만큼 능하면서. 입가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둘이 살기에 딱 적당한 멘션에서 거실의 소파에서 부엌까지는 몇 걸음 걸리지도 않았다. 기척을 숨기지 않고 부러 성큼성큼 다가갔는데도 아카이는 저항없이 양 팔을 잡혔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엔 부응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야.”
“자꾸 헛소리 할 거예요?”
“…배고프다고 하지 않았나.”
딴말은. 후루야가 키들거렸다. 귀여우니 한 번은 넘어가 줄까.
“좋아요. 우선 밥부터 먹죠. 그 다음에 제대로 말해요.”
까무룩 끼친 어둠에 커튼은 닫았다. 팔짱을 낀 후루야가 허브차와 함께 후식으로 준비한 과일을 내놓는 아카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을 꺼낸 이래 의외로 저자세로 나와 보는 재미가 있었다. 디저트용 포크 두 개를 접시에 올린 아카이가 소파에 앉아 두 손을 양 무릎에 올렸다. 혼날 준비가 된 어린 아이같았다.
“…그래서?”
“…꼭 말해야 하나.”
후루야가 눈을 치켜떴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한 표정에 아카이가 몸을 움츠렸다. 왼손으로 오른손 중지 끝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말을 이었다.
“…딱히 그러려던 건 아니야.”
“호오?”
“실제로 자네처럼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할 수 없다, 가 아니라 하지 않는 거겠지. 냉침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후루야가 속으로 정정했다.
아카이 슈이치는 오만했다. 통찰력, 추리력, 절권도에 소름끼치는 사격 실력까지, 그는 누구보다도 제 능력을 잘 아는 남자였다. 웬만한 일이면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때문에 그는 늘 한결같았다. 후루야는 그가 검은 조직에 잠입했을 때를 기억했다. 지금보다 차가운 얼굴을 했을지언정 모로보시 다이는 거짓 신분을 제외하면 아카이 슈이치였다. 변함없이 매사에 무심해보였고 스스로를, 아니 오직 스스로를 믿었다. 자잘한 설정에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말수를 줄이고 천천히 맡은 임무를 성공시키며 두각을 드러냈다. 뱀 같은 아무로 토오루, 조직의 정보상 버본을 완전히 입체적인 인물로 재현한 자신과는 달랐다.
“그러려던 게 아니라면,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론 그랬다는 거잖아요?”
“…….”
제로는 공안의 최정예 특수활동부대였다. 소리소문없이 선발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첩자로 양성됐다. 경찰 학교의 수석은 물론 캐리어 선발 시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후루야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언제 어디로 투입될 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얼굴이 알려져서도 안되니 현장 경력도 은밀하게 쌓아야 했다. 경찰 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현장을 익혔다. 쉬운 일도 쉽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적어도 실패한 임무는 없었다. 그러기를 이 년, 국제 범죄 조직에 잠입하라는 상부 지시가 내려왔다. 중요도만큼이나 위험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그 때는 아직 어렸다. 자신감이라 부르기엔 미약한 것을 가지고 후루야 레이는 아무로 토오루를 창조했다. 확신은 없었으며 있는 것은 오로지 맡은 일을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는 유들한 얼굴과 얌전한 언행을 익혔다. 눈을 접어 웃으며 어디에든 섞이게 되었다. 이질적인 껍질을 뒤집어쓰고 버티는 것을 소꿉친구인 경시청 소속 잠입수사관이 도왔다.
조직에서 만난 모로보시 다이는 손에 박힌 가시같았다. 너무 깊게 박혀 그를 꺼내려면 제 살을 째야했다. 아무로 토오루로서 물에 넣은 설탕처럼 조직에 녹아들기엔 고고한 듯 담배를 빼어문 남자가 자꾸 후루야 레이를 끌어냈다. 라이플을 겨누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차라리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조직의 정보를 빼내는 임무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그와 행동을 함께해야 할 것만 같았다.
기저에 깔린 것이 미숙한 동경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인정할 수 있다. 무심하게 내버려두지만, 결이 좋은 검은 장발. 늘 걸치는 가죽 라이더 자켓과 성냥을 특이하게 기울여 태우는 담배. 족히 이십 킬로그램은 넘어가는 라이플 백을 가뿐히 매고 다니는 남자는 한 마리 맹수 같았다. 그 모습이 자유롭고 고고해보여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일단은 내가 연상이기도 하고.”
“계속해요.”
“내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자네가 내 성숙해보이는 부분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고.”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좋아하는 상대한테는 잘 보이고 싶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끝맺길래 후루야는 창 밖을 보던 시선을 서둘러 아카이로 향했다. 양손으로 깍지를 낀 아카이 슈이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전과 달리 짧아진 검은 곱슬머리 사이로 보이는 귓바퀴가 발갰다. 후루야가 서둘러 그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얼굴을 가린 두 손을 잡아내렸다.
“…이런 표정도 할 줄 아는군요, 당신.”
모로보시 다이는 안색이라곤 해질녘의 노을이 얹은 붉은 빛이 전부인 남자였다. 늘 가지고 다니는 라이플마냥 싸늘한 낯을 하던 남자가 얼굴을 형편없이 붉게 물들였다. 평정이 산산조각난 자리를 달고 부끄러운 감정이 채웠다. 열로 달아오른 미간이 구겨지고 어쩔 줄 모르는 듯 눈을 피했다.
“……나쁜가.”
“…아뇨, 신선한데요.”
“…자네 앞에서만이야.”
보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후루야가 키들거렸다. 환심을 사기 위해 꾸민 것이 아닌, 천진한 기쁨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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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
1) (비격식) 어린아이
2) (특히 영국) 술의 한 모금, 한 잔; 소량